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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06. 위어드 WEIRD - 조지프 헨릭(Henrich, Joseph)

by limshin 2025. 1. 26.

3. 집단적 친족의 해체와 국가 제도의 등장

농경이 시작되던 시기에 모든 사회는 가족의 유대, 의례적 결속, 영속적인 개인 간 관계에 뿌리를 둔 제도 위에 세워졌다. 그리고 새로운 제도는 언제나 이와 같은 오래된 토대 위에서 기존의 형태를 다양하게 확대하거나 강화하는 방식으로 형성된다. 다시 말해, 가족, 결혼, 의례, 개인 간 관계 등 친족에 기반한 제도와 관련된 사회 규범은 사회의 규모가 커짐에 따라 더욱 복잡해지고 집중되었을 뿐이다. 이후에 친족에 기반한 제도만으로는 사회의 규모를 더 이상 늘리기에 충분하지 않게 되자 친족에 기반하지 않고 친척과 무관한 제도가 추가로 발전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이런 제도 또한 항상 친족에 기반한 제도라는 뿌리 깊은 토대 위에 세워졌다. 친척과 무관하고 비개인적인 새로운 제도를 만들 때 사람들이 오래된 친족 기반 제도를 간단히 무시해버릴 수 없었다는 사실은 연구자들이 말하는 이른바 강한 경로 의존성path-dependence을 만들어낸다. 다시 말해, 새로운 형태는 언제나 오래된 형태 위에 세워지기 마련인데, 오래된 형태가 우리의 진화된 영장류 심리에 고정되어 있다면 새로운 제도가 발전할 수 있는 경로의 수는 제한되어 있다.

 

 

3-1. 거대한 공동체, 일라히타의 특별한 의례
공동체는 300명을 넘으면 분열이 생기기 시작했고, 결국 씨족 간의 사회적 불화가 발생했다. 이 300명 규칙에 예외가 하나있다. 일라히타Ilahita라는 이름의 아라페시족Arapesh 공동체가 39개 씨족을 통합해서 2,500명이 넘는 인구 집단을 만든 것이다.

일라히타는 탐바란Tambaran이라는 고유한 형태의 제례를 중심으로 문화적, 심리적 상호책임과 상호의무의 연결망을 만들고 대규모 공동체 사업을 위해 협력을 요구하며 공동체 의례를 통합했다. 이런 상호 의무와 공동 사업이 개인들 사이는 물론이고 여러 씨족과 작은 마을 간의 정서적 결속을 형성하게 했다. 탐바란 의례를 수행하는데서 자기 공동체의  번영과 명망이 나온다고 믿었고, 탐바란 신들은 마을 전체의 신으로 공동체에 화합과 안전, 성공을 가져다주며 공동체를 다스렸다. 마을의 화목함에 문제가 생기면 탐바란 신들이 마을 사람들에게 벌과 죽음을내린다는 초자연적 믿음이 있었기에 마을 사람들은 더 크게 화합을 이루었다. 이런 문화적 요소들은 타고난 인간 심리의 몇 가지 측면을 활용해서 일라히타 씨족들 사이에 정서적인 결속을 강화하고 지속시켰다.

탐바란은 개인이 의식적으로 고안해낸 것이 아니며, 개인은 분명 그 요소들이 어떻게, 또는 왜 작동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탐바란은 세대를 거쳐 진화, 확산되며 다양한 형태로 변형되었다. 일라히타는 그냥 우연히 탐바란이 가장 잘 작동하는 형태를 만들었을 뿐이다.

* 공동체가 규모를 확대하는 과정
일단 한 집단에서 협동을 향상시키는 새로운 규범이 등장하면, 집단 간 경쟁을 통해 그 규범이 선택되고 널리 퍼져나간다. 집단 간 경쟁 과정은 세대를 거쳐 사회 규범을 모으고 재결합해서 사회가 통합하고 단합하고 확대할 수 있게 해준다. 또한 기존 제도와 새로운 규범이나 믿음 사이의 사회적, 심리적 ‘적응성’의 영향을 받는다. 새로운 규범과 믿음은 집단이 기존에 가진 문화의 맥락 안에서 등장해야 하며, 만약 다른 집단의 것을 모방한다면 고유한 제도와 들어맞아야 한다.

인간의 사회성과 심리는 제도에 영향을 받는다.

 

 

3-2. 더 큰 공동체를 위한 필요조건
농경사회 이전에는 이산화탄소의 농도가 낮아서 식물 생장이 저해되며 생산성이 낮아지고, 식물먹거리가 널리 흩어져 있었다. 이런 불모의 환경에서 광범위한 친족 기반 제도에 의해 생겨난 사회적 연결망 덕분에 구석기 시대 수렵채취인들은 넓은 영역을 아우르고 있었다. 2만년전부터 이산화탄소의 양이 많아지면서 기후가 점차 따뜻해지고 계절이 뚜렷해지고 안정되자 식물 생산성이 높아지며 농경공동체가 생겨났다. 초기의 농경이 확산된 것은 합리적 개인들이 농사를 선호했기 때문이 아니라 특정한 제도를 가진 농경 공동체가 이동 생활을 하는 수렵채집인 인구 집단을 집단 간 경쟁에서 물리쳤기 때문이다. 문화적 진화는 자연스럽게 오래된 사회적 본능을 이용하여 기존의 친족기반제도들(씨족)을 개조하고 수정하며 더 촘촘하고 협력적인 공동체를 형성해 나갔다.

집단이 확대되는 경우에 씨족은 한쪽 출계를 선호함으로써 양계 친족 기반 제도에서 발견되는 내부 갈등을 누그러뜨린다. 이런 갈등을 완화하기 위해 씨족은 계보의 한쪽을 다른 쪽보다 높이고, 친족 인정의 초점을 개인 중심에서 공통 조상 중심으로 이동시킨다.

집약적 친족 기반 제도 덕분에 집단은 영역을 차지하고 방어할 뿐만 아니라 협동 노동, 공동 소유, 부상이나 질병, 노령의 병약함에 대비하기 위한 토대를 마련할 수 있었다.

집약적 친족 기반 제도 위에서 축적되는 문화적 진화는 분절적 혈족segmentary lineage동년배집단age-set을 통해 더 높은 수준의 다양한 통합적 제도를 만들어냈다.

분절적 혈족은 단일 씨족에서 곧바로 규모를 확대할 수 있는 제도적 메커니즘을 제공한다. 이런 출계 기반 제도는 개인과 공동의 명예를 중심으로 형성된다. 분절적 혈족은 다른 집단들과 경쟁하며 자기 영역에서 쫓아내거나, 동화하는 식으로 퍼져나갔다.

세계적으로 분절적 혈족 속에서 끓어오른 명예 심리가 ‘이슬람 테러리즘’의 특성을 가장 잘 설명해준다고 주장하고 있다. 가령 보코하람Boko Haram, 알샤바브Al Shabab, 알카에다는 모두 분절적 혈족을 지닌 인구 집단에서 가장 많은 성원을 끌어모으며, 그들이 가진 친족 기반 제도의 특성이 이 집단들이 채택한 특정한 종교적 신조를 형성했을 것이다.

동년배집단 제도는 각기 다른 친족 집단이나 거주 공동체의 또래 남성들을 하나로 모은다. 동년배집단이 흥미로운 것은 어느 정도 중앙집중화된 권위를 창출하는 한편 여러 차례의 성년식 의례, 공동 책임, 전쟁을 비롯한 공동 활동을 함께하며 같은 경험을 공유함으로써 하나로 결속된다.

분절적 혈족과 동년배집단은 평등한 사회가 씨족과 친속을 넘어서 규모를 확대하도록 해주지만, 중앙집중적이고 안정된 위계적 권위가 부족하다.